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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전시일정

종료

이은정 개인전 "사물에서 나를 보다"

진행일시
2023.11.10 ~ 2023.11.17
전시장소
선광미술관
문의

상세정보

사물에서 나를 보다

See me in objects

 

Synopsis

뜨거운 여름 돌담 사이로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 더위에 지치지 않고 뜨거운 태양과 장맛비를 이겨내고 주홍색의 꽃은 또 다른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시들지 않고 통째로 떨어지는 당당함을 보이는 꽃,

 

길옆에 핀 강아지풀, 보이지 않던 것이 고개를 내민다. 나를 보아 달라는 손짓처럼 말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 위로, 그리고 지나쳐 버린 마음, 셔터를 누른다.

 

잠들고 있는 엄마를 깨우고 싶어서 져버린 연꽃밭을 서성인다.

홀로 지내시면서 자식들만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들이 데자뷰처럼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내 사진의 원천은 엄마이다.

숨죽여 흐르는 눈물은 하얀 빛들로 부서져 사진 속에 머문다.

 

오래된 낡은 나무 의자가 좋다. 오십이 넘으면서 그런 고마움을 잊지 않고 천천히 물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보이지 않는 저 구름 너머에 내가 동경하는 것이 있다. 그렇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픈 생각에 잠기곤 한다. 거부하지 못하는 일들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두고 온 생각들과 잡스러운 생각들로 종종 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그곳에 간다.

그때는 우울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피사체와 손때묻은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지친 마음의 문을 열어 줄 canon 1V를 메고 새벽녘 혼자 길을 걷는다.

안개 너머 벌판에 서서 뿌옇게 번지는 빛들을 보았다. 그 빛은 평범한 사물을 빛나는 순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온전히 나의 길을 가는지 물어본다.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정신없이 지나온 나날들, 그 시간은 사라졌지만 나의 필름 작업을 통해 생각과 기억들이 인화지 위로 드러난다. 모래알 같은 필름의 은입자 사이에 감정들이 숨어있다.

나의 아날로그 작업은 몸이 느끼며 보여 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매번 현상을 하면서 실수하게 될까봐 늘 긴장되고 힘들다.

하지만 나 자신의 선택이었으므로 외롭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사치이다.

붓을 가지고 점을 찍듯이 생각과 의지대로 칠을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깊이가 있는 작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날로그가 가지는 무게감도 있다.

좀 더 예술적이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 필름을 놓을 수가 없다.

 

첫 번째 사진 작업은 흑백으로 절제된 감정선을 표현했다면 두 번째 작업은 헤매이던 나의 정체성을 컬러까지 확산시켜 재해석한다.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지만 뷰파인더 안에서 ‘언제나 나를 본다’

사진 그 이상의 이념과 목표가 생겼고 자신의 마음을 떠나 타인에게 중심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포맷을 벗어나야 새로운 작품,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도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을 위해 손을 내미는 이유는 내 존재를 온전히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부지런한 여행자의 길을 택했고 지금도 시간은 흘러간다.